1955-2011 Steve Jobs

2011.10.06 23:30 이런저런/오늘의 이슈

1955-2011

바라보기만 해도 슬픔이 몰려 오는 사진이 있습니다. 재작년에 돌아가신 저의 아버님 영정과 같은 해에 삶을 다하신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입니다. 밝게 웃으셔도 가슴이 메어집니다. 그런 저에게 또 하나가 생겼습니다. 언제나 자신 있고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듯 신비로운 얼굴이었는데, apple.com 첫 페이지에 올라온 사진은 저를 슬프게 합니다. 1955 다음에 2011이라는 숫자가 나란히 있다는 것이 매우 착잡하게 합니다.

Apple ][+

제 직업이 프로그래머가 된 이유는 작은 컴퓨터 때문이었습니다. 친구 따라 우연히 들른 세운상가에서 컴퓨터라는 것을 처음 보게 되었고 흥미로웠지만,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저는 제 이름을 또박또박 키를 찾아가며 눌렀습니다. 그리고 제 이름 아래에 "]SYNTEX ERR"라는 문자열이 출력되었는데, 그 문자열은 컴퓨터가 저에게 준 첫 번째 응답이었습니다. 이런 상호 반응에 컴퓨터에 큰 매력을 느꼈고, 프로그램 학습에 빠져 결국 직업도 프로그래머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이름이 "문법 오류"라고 출력했던 그 컴퓨터가 바로 스티브 잡스가 만든 "Apple ][+" 였습니다.

"Apple ][+"라고 쓰고 "애플 투 플러스"라고 읽었던 그 컴퓨터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사양이었지만, 당시 젊은이들에게는 디스코만큼이나 뜨거운 존재였고 충격이었습니다. 기본 사양은 매우 낮았지만, 사용하는 곳은 매우 다양했습니다. 유명한 게임도 많았죠. 아마 Apple ][+ 사용자라면 "로드 러너"라는 게임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게임을 싫어하던 저도 한참 빠졌던 너무나도 유명한 게임이었습니다.

그 작은 컴퓨터로 많은 전자 개발업체가 우후죽순식으로 생겨났고, 과연 8bit 컴퓨터로 어떻게 저런 시스템을 만들어 냈을까 놀래게 하는 제품도 많이 나왔습니다. 이런 흐름에 우리나라가 IT 강국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공과대가 활발할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Apple ][+ 영향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GUI 와 마우스

Apple ][+를 이어 IBM 컴퓨터가 활발히 팔릴 때, 세운상가에서 컴퓨터를 판매하던 분이 이런 얘기를 해 주더군요. 컴퓨터를 사갔던 손님이 다음 날 땀을 뻘뻘 흘리며 모니터와 본체를 들고 오면서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고장이 났다며 호들갑을 피우더랍니다. 이유인즉, 컬러인 줄 알았는데 집에 가서 켜 보니 흑백이라는 것이죠. 분명히 살 때는 컬러였는데, 집에 가서 아무리 해도 흑백이랍니다.

이유를 아시는 분은 벌써 웃으실지 모르겠네요. 그 시절에는 윈도우가 아닌 DOS가 많이 사용되었고 텍스트 환경으로 부팅하게 되었는데, 컬러 모니터라도 그래픽을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띄우기 전까지는 흑색 화면에 흰 글씨만 나옵니다. 그리고 멍청히 캐럿만 깜빡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그런 시절에 그래픽 환경으로 부팅되는 애플 라이저(Apple Lisa)를 스티브 잡스가 만들었다고 했을 때는 저걸 어떻게 사용하나 걱정했을 정도였는데, 이후로 그 제품이 GUI 환경과 마우스 대중화의 시작인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즉, 스티브 잡스는 개인용 PC에서 GUI와 마우스를 대중화 시킨 주인공입니다.

 

대한민국 스마트폰을 스마트폰 답게 만들어준 스티브 잡스

이외에도 당시의 기술로는 무리하게 보이는 놀라운 제품을 만들어 냈습니다만, 최근에 와서 스티브 잡스에게 고마운 것은, 덕분에 한국에서도 스마트폰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가 1천만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만일 Wi-Fi를 사용할 수 없었다면, 그래서 예전의 그 비싼 데이터 통신을 사용해야 한다면 지금처럼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가 1천만을 넘겼을까요?

트위터에서 어떤 분이 스티브 잡스의 공로를 "아이폰이 없고 옴니아만 있는 것을 상상해 보라"라는 글을 보았는데, 저는 이 말에 모두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옴니아 보다 아이폰은 훌륭합니다. 그러나 저 개인적으로 옴니아 이전에 스마트폰을 사용했었고, 분명히 그 제품보다 옴니아는 훌륭했습니다. 또한, 경쟁적으로 좋은 제품은 계속 나왔을 것입니다. 아이폰이 없었다고 갤럭시가 안 나왔을까요? 구글의 안드로이폰은요? 저는 옴니아와의 비교보다는 "Wi-Fi를 사용할 수 없는 스마트폰을 상상해 보라"라고 고쳐 말하고 싶습니다.

아이폰이 들어 오기 전에도 스마트폰이 있었고 이동 중에도 웹 브라우저로 검색할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도 있었구요. 그러나 어디 겁나서 사용할 수 있어야 말이죠. 이통사의 횡포에 눈치를 보던 제조 업체는 Wi-Fi를 넣지 못했습니다. DMB를 넣다 보니 공간 문제로 Wi-Fi까지 넣을 수 없다는 이해하기 힘든 변명은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이폰이 나오면서 그 불가능하다는 일이 바로 해결됩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DMB와 Wi-Fi를 모두 갖춘 제품이 나왔으니까요. 그리고는 아이폰은 DMB가 안 나온다고 공격합니다. 정말 얄밉지 않습니까?

결국, 아이폰이 들어 와서야 국내 스마트폰에 Wi-Fi 기능이 탑재되었다는 것입니다. Wi-Fi 탑재가 대중화 되었다는 것입니다.

상상해 보세요. 비싼 돈 주고 스마트폰을 구매했는데, 요금이 걱정돼서 카카오톡은 사용 못 하고, 카카오톡도 사용 못 하는데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어디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길을 헤매도 구글 지도를 열어 볼 엄두가 나지 않고, 웹 브라우저는 필요할 때마다 살짝, 구글 뮤직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는 생각도 못 하고, 클라우드 서비스는 딴나라 얘기고, 메일은 제목만 확인, 연락처와 메일 동기화는 집이나 회사에서 USB로만 한다면 이게 어디 스마트폰입니까? 그러나 이런 일이 불과 재 작년, 그것도 연말 11월까지 스마트폰 사용자 대부분이 이랬습니다.

그러나 이통사에 굴하지 않은 스티브 잡스의 배포로 국내에서도 스마트폰을 스마트폰 답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일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 오지 못해서 계속 그 비싼 데이터 통신을 사용해야 했다면? 아이폰 보다 더 좋은 제품이 있어도 끔찍하죠.

우리와 같이 살았던 영웅, 스티브 잡스

이렇게 적고 보니 스티브 잡스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네요. Apple ][+로 장래의 희망을 키웠고, 직업이 결정되었으며, 최근에는 그가 만든 제품으로 하루를 함께 하고 있으니 말이죠. 근래에 스티브 잡스의 건강 악화설이 있었고 보기에도 수척해 보였지만, 고인의 명복을 이렇게 빨리 빌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같은 시대에 살았든, 책으로만 보았든 영웅의 사라짐은 시간이 흘러도 안타깝습니다. 10년을 더 살았으면 아이폰 5를 내놓고 6와 7 외에도 또 다른 놀라운 제품을 만들어 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소식을 기다리게 했던 사람이 이제는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이 슬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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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masi
    • 2011.10.07 05:16 신고
    와이파이는 아이폰이 나오기 이전에도 kt향 pda폰들에서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와이파이가 되는 pda폰(혹은 스마트폰)을 찾기 힘들었다기 보단 법인용 pda폰을 제외한 대다수의 pda폰에 위피를 넣어야 했기에 대다수 기업들이 내놓질 않은거죠. 사실 이게 최고의 삽질이 아니였나 싶습니다. 위피를 까는것과는 별개로 말이예요.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게 욕하는 옴니아 도 사실 정통부가 위피 예외 규정 을 만든 이후에나 나올 수 있었던 오랜만에 세상 빛을 볼 수 있었던 pda폰이죠.

    그리고 아이폰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아이폰의 성공 비결엔 '값' 이 우선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는 아이튠즈 덕에 떴다고 누구는 감성(이라 적고 중소기업을 죄다 돈빨로 빨아먹은 독점행위의 결과 라 읽는다) 덕에 떴다고 하고 누구는 앱 덕에 떴다고 합니다만... 실지 그 모든 이유는 3부터나 부각된 이유이고(2까진 터치감 마저 아이폰이 지적당하는 최대 단점 중 하나였죠) 실질적인 이유는 당시 타사 스마트폰이 1천달러에 육박하던 시기에 셀룰러 모듈을 달고 나온 스마트폰이 단돈 3xx달러에 출시되고 그나마도 나중엔 값을 깎아주고 기존 고객들에게 환불까지 해줘버려서 라고 생각합니다. 애플은 철저하게 기존에 존재했음에도 가격덕에 서민에게 다가서지 못한 부분을 공략한거죠. 그 일환으로 아이패드가 있겠습니다. 아이패드가 나오기 직전까지도 테블릿pc는 200만원 중반부터, 그나마 umpc나 150부터 볼 수 있었습니다만 아이패드는 딱까놓고 500(이건 정확하지 않네요 얼마였더라...) 달러 찍고 시작했죠 -_-

    잡스는 대단히 뛰어난 사업가임에 분명합니다. 늘 다른 이들이 놓치는 부분을 잡아내고 그것이 도태되지 않도록 트랜드화 시키는데 능숙하죠. 뭐 그 과정에서 애플 다떨어먹은 망작들도 있었습니다만(파워맥 G시리즈이라던지i맥이라던지) 애플이라는 거대 기업을 키워내며 하나의 스타 플레이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먹여살릴 수 있고 잡스독재 라 불릴 정도로 독선적인 경영관도 어떻게 하냐에 따라 통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들을 보며 꽤 즐거운 디지털 라이프를 즐겨왔다 생각이 드네요. 정작 그런 그는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나이에 가는군요.

    인생사 새옹지마 라는 말이 이렇게 와닿기도 첨입니다.
    • 그렇군요. 지상파 DMB때문에 Wi-Fi를 뺐다는 문구를 자주 보아서 Wi-Fi를 넣은 제품이 나왔지만, 이통사의 데이터 통신에 의한 이윤 때문에 이후로 안 나왔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KT에서는 Wi-Fi를 탑재한 제품이 많았었군요. 흠~ 그런데 왜 KT에서 아이폰을 처음 들여 올때 Wi-Fi를 빼 달라는 얘기가 나왔을까요? 아마도 루머에 낚였는지 모르겠군요. 말씀 감사합니다. ^^
      • dmasi
      • 2011.10.07 11:27 신고
      루머 중에서도 악성 루머죠. 당시 아이폰이 매번 담달 폰으로 출시가 미뤄지던 와중이라 앱등이들 사이에서 별소리가 다 있었습니다 ㅡ_-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죠. 당시엔 위피 규제가 완전히 풀려 있던 때라 솔직히 애플 스스로가 들어왔어도 출시 가능한 시기였습니다. 거기에 더해 KT가 3W(wifi, wibro, wcdma) 전략을 준비하던 상황이라 애당초 아이폰에서 와이파이를 빼라는 소리를 할 이유가 없던때였죠. 당시의 skt나 lgt처럼 cdma기반 데이터 요금제가 없으면 인터넷 서비스도 못할 만큼 허접한(...)기업도 아니였구요. 와이브로는 수도권까지 밖에 안됐었지만 와이파이(넷스팟)는 월드컵 이전에 이미 전국 관공소와 대학, 공원 등에 설치되 있었죠.

      아이폰의 출시에 대해서도 솔찬하게 이야기 드리자면 잡스는 한국에 낼 생각 자체가 없었습니다 ㅡ_- kt에서 협상에 시간이 걸린것도 애플이 스스로 해야할 현지화를 kt에게 미루느라 시간이 걸린거죠. 속된 말로 쪼다 잡스인지라 삼성 LG가 모두 포진해 있는 지도에도 점만하게 나오는 국가따위에게 한글화 해줘가며 내놓을 생각이 없었던 겁니다 -_-... 안그래도 잘팔리는 폰이었거든요. 결국 모든 짐은 kt가 지는 것으로 출시가 됐습니다만 아이폰의 결함상 생기는 문제마저 kt가 욕먹고 애플은 찬양만 받았었죠. 올인원 요금제라도 내놓지 않았다면 죽쒀서 개나 준 꼴이 됐을겁니다.
    • 역시 그렇군요. 저 같은 경우 10년 넘게 SKT만 사용했기 때문에 PDA를 사용하고 있어도 Wi-Fi를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KT에서 넷스팟을 제공한다고 하기에 바꾸려 혔는데, 대학이나 유명 커피셥 주변이 아니면 사용하기 힘들다고 하네요. 그래서 낚였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무선 공유기가 집에도 있는데, 이것을 사용하지 못하니 Wi-Fi를 사용할 수 없다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래서 그런 루머도 생기고 저 같은 사람들이 낚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 jwman
    • 2011.10.07 08:52 신고
    아~ 저도 중학교 2학년 때 어버지께서 APPLE II 컴퓨터를 사서 들고 오셨던 날을 잊을 수가 없네요~
    그 날이 현재 제 커리어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운영자님과 비슷한 것 같네요^^
    정말 신기하던 BASIC 프로그램, 5.25인치 자기디스크 저장 장치, 그리고 로드런너 1,2,3 까지 정말 미친 듯이 한 기억이 납니다...
    고인이 알게모르게 제 삶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았음이 지난 추억과 함께 느껴지네요~~
  1. 잡스는 우리가 눈에 보이는 충격 그 이상의 무언가를 남기고 떠나는듯 합니다.
    어제 뉴스를 보았는데
    잡스가 2005년 명예 졸업인가를 하면서 윈도우의 베끼기를 통렬하게 까대던 연설이 나오더군요
    그 에너지가 불과 6년전이라니 믿겨지지 않습니다.
    잘봤습니다.
    • 싸움꾼
    • 2011.10.07 11:41 신고
    한 시대를 변화시켰던 걸출한 인물이 세상을 떠난 것이 안타깝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 정말 공감가는 이야기들 입니다.
    애플에 이런 인물이 또 나올 수 있을까요?
    • 4천만
    • 2011.10.07 22:08 신고
    애플2와 아이폰은 세상을 바꾼 혁명이였죠.

    PDA 어쩌고 떠들어도,
    지금도 폴더폰으로 메일 하나 보기 힘들죠.

    핸폰으로 드라마 한편 받았다 데이터 요금 때문에
    자살한 일가족 저녁뉴스마다 나온게 불과 얼마전 입니다.
    이 뉴스가 사라진게 아이폰이 나오면서 구요.

    아직도 모뎀쓰던 때가 그리워서, 데이터 요금제니
    인터넷 종량제나 떠드는 대기업은 요금제 단말기 제조업체일 뿐이죠.

    아직도 스마트폰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아이폰 나올때 마다, 최고의 부품 운운하는 족벌기업에게
    피자와 통닭 이상의 개념을 기대한다는거 자체가 무리죠.

    나와 함께 세상을 바꿀건가, 평생 설탕물만 팔껀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3. 스마트폰의 세계를 바꾼 혁명이지만..
    다르게 말하면 우리나라 자체적으로도 더 좋은 방향이 될수 있는데
    대기업이 다 해쳐먹는 바람에 망하고 있는게 안타깝죠..

    솔찍히 USB 타입의 3g 모뎀으로 해서 전화용 프로그램을 제공하면
    PC에서도 충분히 핸드폰 없는 세상이 왔을텐데
    데이터 용으로만 "통신사에서 막아놓는" 문제가 있다 보니
    아이폰과 같은 방향으로는 나가지 못한 문제가 있죠.
  4. 아이폰이 나오지 않았다면 아마 이제쯤이야 갤럭시s정도 스펙의 기기가 나왔을겁니다...